서시 -신성우
해가 지기 전에 가려했지 너와 내가 있던 그 언덕 풍경 속에
아주 키 작은 그 마음으로 세상을 꿈꾸고 그리며 말했던 곳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소중한 내 친구여
때론 다투기도 많이 했지 서로 알 수 없는 오해의 조각들로
하지만 멋쩍은 미소만으로 너는 내가 되고
나도 니가 될 수 있었던 수많은 기억들
내가 항상 여기 서 있을게 걷다가 지친 네가 나를 볼 수 있게
저기 저 별 위에 그릴거야 내가 널 사랑하는 마음 볼 수 있게
내가 항상 여기 서 있을게 걷다가 지친 니가 나를 볼 수 있게
신성우의 서시는 발표 당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노래입니다. 저랑 비슷한 30~40대 남성들이 노래방에서 애창하는 곡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1994년에 발표된 노래니까 20년도 훌쩍 넘은 노래입니다. 오래된 노래를 소재로 삼은 것은 ‘내가 항상 여기 서 있을게 걷다가 지친 니가 나를 볼 수 있게’라는 가사 때문입니다. 2004년 제가 처음 대중문화와 사회복지에 대한 글을 쓰던 때에 저는 이 가사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서시’에서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항상 여기 서 있을’ 거라고 한다. ‘걷다가 지치면’ 언제든지 자기를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사회복지는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이기에, 관계를 맺는 일이기에 직장을 정함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 또한 한 번 일하기 시작했다면 쉽사리 자리를 바꾸어서는 안될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신뢰의 문제인 것이다. 가장 큰 신뢰는 네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내가 여기서 널 기다리겠다는 것이니까.
2004년이면 제가 학부 4학년 때입니다. 아직 현장에서 일하기 전이니까 나라는 존재는 쏙 빼고 마치 제삼자처럼 이렇게 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쓴 글입니다. 한 직장에서 ‘내가 항상 여기 서 있을게’ 하는 게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많은 환경과 상황이 허락해야 하는 일인지 그때는 미처 몰랐지요. 2006년 9월 가양5종합사회복지관에 입사했으니 올 9월 만 10년을 일했습니다. <어쩌다 어른>이라는 프로그램 제목처럼 ‘어쩌다 10년’을 맞이한 것이지요. 10년을 일하고 보니 내가 하는 일이 기관과 지역주민들에게 어떻게 기여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주민들의 변화와 나의 성장을 꾸준히 볼 수 있고 그 맥락을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시점에서 <서시>를 다시 들으니 다른 가사가 더 눈에 들어옵니다.
때론 다투기도 많이 했지 서로 알 수 없는 오해의 조각들로
하지만 멋쩍은 미소만으로 너는 내가 되고 나도 니가 될 수 있었던 수많은 기억들
물론 제가 10년간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좋은 기관, 좋은 지역주민들, 좋은 상사와 동료들을 만난 덕입니다. 억세게 운이 좋았지요. 10년의 시간 대부분이 의미 있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부딪힘도 있었고 다툼도 있었고 오해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 사는 곳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인데 그때는 참 힘들어했습니다. 하지만 10년의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니 일종의 신뢰가 생긴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저의 말에 오해하신 어르신이 다른 직원을 통해 불만을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찾아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찬찬히 설명을 드리려고 해도 처음에는 듣지 않으시고 서운함만 말씀하셨습니다. 다 듣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해도 계속 당신이 서운하다고 하셨습니다. 끝까지 들으며 서운한 마음을 공감해드리고는 정중하게 어떤 상황인지 말씀드렸습니다. 그 후 어르신을 만날 때마다 전보다 더 반갑게 인사드렸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니 그 어르신 역시 이전보다 저를 반갑게 대하셨습니다. 노래 가사처럼 ‘멋쩍은 미소만으로’ 오해가 풀린 것입니다.
벌써 10년을 보아온 어르신인데 작은 오해야 곧 풀릴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10년을 일하며 이렇게 ‘멋쩍은 미소만으로 너는 내가 되고 나도 니가 될 수 있는’ 관계들을 많이 만들고 깊게 쌓아온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내가 항상 여기 서 있을게 걷다가 지친 니가 나를 볼 수 있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멋쩍은 미소만으로’ 서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관계가 전제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회복지를 하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표 중 하나가 관계맺기와 관계강화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10년을 일하며 제 스스로가 관계를 통해 ‘너는 내가 되고 나도 니가 될 수 있었던 수많은 기억들’을 쌓아온 것도 이유가 될 겁니다. 처음 만난 사이에서 어떤 일을 도모하는 것보다 관계를 맺는 사이에서 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재미있습니다. 척하면 척하게 됩니다. 작년부터 ‘인사만 잘해도 인정 넘치는 동네가 됩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인사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일단 서로 인사만이라도 하는 관계가 되면 동네가 변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동네에는 좋은 관계들이 넘쳐납니다. 주민 집에 가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와 욕구를 이웃관계로 자연스럽고 지속적으로 해결하고 있는 경우들을 종종 봅니다. 이웃의 언니, 형님, 누구 엄마가 자주 와서 이야기도 나누고 소소한 도움도 준다고 합니다. 그런 관계들을 만들고 강화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걷다가 지친 니가’ 언제든 주변을 둘러보면 ‘내가 널 사랑하는 마음 볼 수 있게’ 되는 지역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한 기관, 지역에서 10년을 일하며 배운 것을 어떻게 더욱 잘 실천할 수 있을지 10년을 맞은 저의 화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