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거 왜 하는 거야?” 이서진은 여전히 투덜댄다. 2014년 10월 나영석 PD와 배우 이서진은 할배들과의 여행이 아닌 좀 독특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돌아왔다. 이름하야 ‘삼시세끼’. 제목 그대로 하루에 밥 세끼를 직접 지어먹는 게 프로그램의 전부다. 이서진과 옥택연이 강원도 정선의 한 마을에 일주일에 한번 들어가 생활한다. 그들에게 부여된 중요한 규칙은 일 년 동안 시골에서 살면서 하루에 세끼를 해먹어야한다는 것. 쌀을 제외한 모든 음식은 이곳에 있는 재료들로 만들어야 하고, 각 끼니의 메뉴는 제작진이 정해주는 것으로 한다는 것이다.
목적이냐 수단이냐
프로그램 설명만 들으면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고, 요리프로그램 같기도 하다. 그런데 ‘꽃보다 시리즈’로 여행버라이어티예능을 개척한 나영석PD가 만든다니 예능프로그램이구나 싶다. <삼시세끼>는 하루 삼시 세끼를 준비하고 먹고 치우는 게 전부인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첫 회에 이서진이 “망했어 망했어” 한 것은 단순히 귀찮아서만은 아니었다. 정말 이런 기획이 예능 프로그램으로 가당키나 하냐는 넋두리였을 거다. 예능다운 재미는 어디서 뽑을 것인지, 예능 출연자로 프로그램의 흐름과 맥은 어떻게 잡아야하는지 도무지 알기 힘든 기획이니 말이다. 그런데도 <삼시세끼>는 이서진이 출연한 <꽃보다 할배>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프로그램을 보며 떠오른 질문은 삼시세끼 해먹는 것이 목적이냐 수단이냐는 것이다.
지역사회복지관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밥 한 끼’다. 경로식당으로 도시락배달이나 밑반찬배달로 어르신들의 밥 한 끼를 돕는다. 그런데 그 ‘밥 한 끼’가 복지관의 고유한 업무일까? ‘밥 한 끼’ 혹은 일주일 치 밑반찬은 지역사회 부녀회, 종교단체에서도 하는 일이다. 여기서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밥 한 끼’가 복지관의 목적이냐 혹은 수단이냐는 질문 말이다.
삼시세끼 해먹는 일은 누구나 다 하는 일이다. 특히 우리 어머니들이 그렇다. 나영석 PD는 누구나 다 하는 삼시세끼에 집중했다. 식사 준비를 위해서는 재료가 필요하다. 지금은 주로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오지만 예전에는 거의 자급자족했다. 거기서 농촌마을을 착안했을 것이다. 또한 밥을 준비한다는 것은 정성을 요하는 일이다. 이 밥을 먹을 자녀나 배우자를 생각하면 음식 준비를 허투루 할 수 없는 일이다. <삼시세끼>에는 이순재, 신구, 백일섭, 윤여정 등 대선배 연기자들이 찾아오고 이서진, 옥택연은 그들을 위해 정성을 다해 밥을 준비한다. 재미있는 것은 <삼시세끼> 출연자가 여성이나 가정주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혼 남성인 이서진, 옥택연이 출연하여 제작진의 요구에 따라 하루 세끼 밥을 해먹으려니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음식을 하는 방식도 아궁이와 솥을 이용하는 전통 방식이다. 여기서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맥이자 문제상황이 발생한다. 도대체 그 음식을 어떻게 만드냐는 것 말이다.
복지관의 ‘밥 한 끼’는 주로 혼자서 식사 준비를 하기 어려운 어르신을 위해 제공된다. 어떤 어르신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어떤 어르신은 신체기능의 문제로 복지관의 ‘밥 한 끼’를 이용한다. 어르신들에게 제공되는 것은 완성된 ‘밥 한 끼’다. 어느 사회복지사의 이야기에 따르면 식사배달 서비스를 3년 진행하면 그 집 밥통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르신이 식사를 해결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복지관에서 드리는 ‘밥 한 끼’가 그 어르신의 잔존능력을 없애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삼시세끼> 마지막회에 이서진, 옥택연은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할 때 쯤 했던 메기매운탕을 쓰레기맛이라고 표현하며 최악의 메뉴였다고 했다. 그런 실패가 있더라도 이서진, 옥택연은 프로그램 규칙에 따라 직접 삼시세끼를 해먹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이서진, 옥택연은 프로그램 동안 40여가지 메뉴를 해냈고, 프로그램 마지막쯤에는 한 끼 식사쯤은 너끈히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40여 메뉴를 해내는 과정 하나 하나에서 예능의 재미를 충분히 뽑아냈다. ‘삼시세끼’를 해먹는 일은 프로그램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 나영석PD는 ‘삼시세끼’라는 결과에 집중하기보다 그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집중했다.
지역어르신의 ‘밥 한 끼’도 목적보다는 수단일 수 있다. 어르신 결식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서비스제공 담당자라면, 사례관리 담당자라면 어르신을 어떻게 도울까. 나영석PD는 <삼시세끼>를 통해 근본적인 질문과 힌트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사자 자원으로 시작하기
<삼시세끼>의 성공이 이서진, 옥택연 만의 노력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이들만큼 중요한 기여자들이 있었으니 게스트들이다. <삼시세끼>에는 윤여정, 최화정, 이순재, 신구, 백일섭, 김광규, 김지호, 류승수, 김영철, 고아라, 손호준, 최지우, 이승기 등 수많은 게스트가 출연했다. 이서진, 옥택연은 이들의 도움으로 농사를 짓고, 밥을 하고, 가재도구를 마련하고 정리했다. 그런데 게스트들은 대부분 이서진과 인연이 있는 연예인들이었고, 특히 윤여정, 최화정, 김광규, 김지호, 류승수, 김영철은 이서진, 옥택연과 함께 KBS 주말연속극 <참 좋은 시절>에 출연했던 배우들이었다.
앞서 살펴본 대로 당사자 내부자원으로 이서진과 옥택연의 노력이 <삼시세끼>를 가능하게 했다. 이서진은 40대 연륜으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거나 먼저 시범을 보여줬고, 옥택연은 요즘 애들 같지 않은 성실함으로 ‘삼시세끼’를 이루어갔다. 여기에 이서진, 옥택연의 외부자원이 함께 한 것이다. 중요한 건 게스트 대부분이 처음 만나 서먹한 이들이 아니라 2014년 2월부터 8월까지 한 드라마에 출연했던 동료들이었다는 것이다. 윤여정, 최화정은 첫번째 편과 마지막 편에 출연하여 음식 준비하는 것을 도왔고, 김광규는 수수밭일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수수농사를 도왔다. 사실 단기간 제작되는 시즌제 예능의 특성상 새로운 인물을 투입하여 출연자와 게스트가 짧은 시간 서로 친해지고 캐릭터가 만들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삼시세끼>는 그런 고려에 따라 출연자들과 익숙한 게스트들을 출연 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함의가 있다. 결식 어르신을 돕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사자 자원을 살피고 끌어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먼저는 어르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하고, 어르신이 아는 사람 중 ‘윤여정, 김광규’ 같은 사람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이들이 실제 ‘음식 준비’, ‘수수밭일’처럼 어르신에게 필요한 일을 해줄 수 있는지 부탁해야한다. 왜냐하면 다른 자원들에 비해 당사자 자원이 훨씬 자연스럽고 지속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결식 해결’이라는 수단으로 시작하더라도 어르신의 삶 다른 영역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될 수도 있고 의미 있는 관계 맺기, 관계 강화하기라는 목적까지 나아가기 쉽기 때문이다.
<삼시세끼> 10회에서 윤여정은 개성출신이어서 어릴 때 만두를 많이 해먹었다고 했다. 증조할머니와 만두를 많이 해먹었는데 증조할머니가 윤여정과 자매들에게 만두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셨다고 한다. 그 때 증조할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이서진, 옥택연, 김광규, 이승기에게 만두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면서 그 시절이 떠오른다면 뿌듯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했다. 어르신들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하는 힌트 역시 <삼시세끼>가 주는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