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방(쿠킹+방송) 전성시대다. 올리브TV <올리브쇼>, <오늘 뭐 먹지?>, tvN <수요미식회>, KBS <한국인의 밥상>, EBS <최고의 요리비결>, MBC <찾아라 맛있는 TV>, GTV <여왕의 레시피> 등이 현재 방영 중이다. 요리 오디션 프로그램 올리브TV <마스터셰프코리아>, <한식대첩>이 시즌마다 좋은 반응을 얻었고, 예능에 요리를 접목한 tvN <삼시세끼>는 동시간대 지상파 프로그램들을 제치고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jtbc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연예인 게스트의 냉장고를 그대로 스튜디오로 가져와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활용해 요리 고수 여덟 명이 요리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TV속 요리들! 하지만 그저 맛집 소개이거나 나와 거리가 먼 이름도 외기 힘든 화려한 일류요리 일색이다. 맛집은 북적대거나 멀거나 혼자는 갈 수 없고 일류요리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것이 현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어느 집 냉장고에나 흔히 있을 법한 재료로 짧은 시간에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요리를 선보인다.’
- jtbc <냉장고를 부탁해> 기획의도
사소하고 사적인 냉장고
<냉장고를 부탁해> 성희성 PD는 한 인터뷰에서 "주위에 누구나 알고 있지만 흔한 것, 사소하게 지나치는 것에 접근하고 싶어 기획하다 냉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시작이 요리는 아니었다. 가장 사적인 공간을 공개해 연예인들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안의 재료로 요리대결을 하는 포맷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의 제목이면서 타 요리프로그램과의 가장 확실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바로 냉장고다. 먼저 냉장고는 철저히 사적 영역이다. 냉장고를 보면 그 사람이 평소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다. 나아가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하는지 싱싱한 음식을 좋아하는지 따위의 식습관도 알 수 있다. 냉장고의 외관, 냉장고 안 정리정돈, 청소 상태를 보며 그 사람의 성격을 짐작해 볼 수도 있다. <냉장고를 부탁해> 전반부에 MC들이 초대한 연예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때 냉장고와 냉장고 안 음식들은 연예인을 요리 프로그램으로 이끄는 자연스러운 장치가 된다.
사회복지사가 주민, 당사자와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일을 해야할까? 사회복지사는 대개 주민, 당사자의 속마음을 알고 싶어 한다. 그에게서 사적인 이야기들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까? 우선 자주 만나서 친해져야할 것이다. 그와 함께 성희성 PD의 말처럼 ‘누구나 알고 있지만 흔한 것, 사소하게 지나치는 것’에 주목해야한다. 흔하다는 것, 사소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보편적인 소재이기 때문이다. 쿡방이 전성기를 구가하는 요인 중 하나는 먹는 것이 우리 삶의 보편적인 소재이기 때문이다.
몇해 전 복지관 직원들이 주민만나기를 해보니 우리 단지에 혼자 살거나, 배우자 없이 아이들과 함께 사는 중년 남성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분들 이야기를 듣다가 사소한 어려움 하나를 알게 되었다. 밑반찬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밥은 전기밥솥이 있으니 해결되는데 반찬은 할 줄도 모르고 배워본 적도 없어서 사다 먹거나 얻어먹는다고 했다. 누가 가르쳐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공동밥상모임’이다.
한달에 한번 중년남성들이 재료를 준비해서 모인다. 동네 아주머니 한분이 강사가 되어 함께 반찬을 만들고, 복지관에서 준비한 밥에 만든 반찬 중 일부를 함께 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반찬을 가지고 가는 식이다. 처음에는 반찬을 만들기 위해 모였는데 그 안에 관계가 생겨 아이 키우는 이야기, 동네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일이 있을 때 따로 만나기도 한다.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정신장애인 이야기모임을 하고 있고, 비슷한 또래 엄마도 알고, 양육정보도 나누자고 해서 공동육아모임도 했다. 이렇듯 거창한 소재보다는 사적이고 사소한 소재들이 오히려 주민, 당사자의 공감을 얻어내기 쉽다.
간단한 요리법
<냉장고를 부탁해>의 시사점 중 하나는 냉장고 속 재료를 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우리집 냉장고에도 들어있을 만한 것들이 그럴 듯한 음식의 재료가 된다. 멕시코 요리 타코의 또띠아는 만두피를 튀겨서 만들었고, 햄버거에 들어가는 빵은 카스테라를 눌러서 만들었으며, 안심스테이크에 달달한 팥맛을 더하기 위해 팥아이스크림을 활용했다. 15분이라는 제한 시간 역시 조리법을 쉽고 간단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었다. 다소 짧게 느껴지는 제한시간 때문에 요리고수들은 음식의 외형 꾸미기보다는 음식 맛에 집중해 조리를 하게 된다. 그리고 각종 조리 도구들도 간편하게 음식을 만드는데 최적화하여 사용한다.
냉장고 안 음식을 재료로 하는 것과 15분의 제한시간을 두는 것은, 앞서 살펴본 프로그램 기획의도 대로 ‘흔히 있을 법한 재료로 짧은 시간에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요리’가 가능하게 했다. <냉장고를 부탁해>를 본 시청자들은 한번쯤 ‘저 재료는 우리 집에 있는 건데’, ‘저 정도는 나도 해볼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하며 직접 요리를 따라해보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냉장고를 부탁해> 홈페이지에 ‘15분 레시피’ 코너가 있어 요리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TV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직접 적용하게 된다는 점에서 <냉장고를 부탁해>는 시청자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떤 시청자가 15분 레시피에 따라 해본 요리가 좋았다면 그 시청자는 <냉장고를 부탁해>에 더 큰 애정이 생길 것이다. TV시청과 체험이 선순환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어떤가. 사회복지 전문가의 프로그램. 복지기관을 거쳐야만 가능한 일이지 않은가. 우리가 하는 일들이 간단한 메시지로 만들어 주민, 당사자에게 쉽게 전달하고, 직접 삶에 적용해볼 수 있는 것들이라면 주민, 당사자들의 삶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삶으로 적용되는 순간 마다 새로운 생명력이 생기고 또 다른 모양으로 파급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