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던 두 회사원 중 한명이 술김에 사표를 던질 거라고 한다. 그 장면은 어느새 브라운관 안에 들어있고 이를 편안한 자세로 지켜보던 한 백수는 “취직을 해야 사표를 쓰지” 하면서 부러워한다. 이 역시 TV 속 한 장면이 되고 각 잡힌 자세로 이를 지켜보던 내무반의 이등병은 마음속으로 부럽다를 연발한다. 다시 한바퀴 돌아 회사원들은 이등병을 보며 제대하면 끝이었던 그 때가 좋았다며 함께 웃는다. 박카스 광고 ‘대한민국에서 000로 산다는 것’편의 내용이다.

짧은 시간에 우리네 삶과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 시청자로 하여금 웃으면서 공감하게 하는 이 광고는 우리에게 박카스 말고 무엇을 더 권하고 있을까?
만족에 이르는 길1 : 성찰하기
광고 속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 결코 만족할 줄 모른다.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누구에게나 나쁜 점이 있는 만큼 좋은 점도 있기 마련이다. 회사원은 일하는 스트레스가 있을 지언정 취업 상태이며, 백수는 취업을 못했지만 편안하게 TV를 볼 수 있고, 이등병은 지금은 각 잡힌 자세로 불편하게 TV를 보고 있지만 반드시 제대가 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광고 속 회사원, 백수, 이등병은 그저 그들의 나쁜 점에 집중할 뿐이다.
우리가 만나는 주민이나 당사자들도 그렇지 않은가. 복지관에서 주는 쌀을 받은 당사자가 몇 년 후에는 받는 것을 당연시하고, 명단에서 한번 빠지기라도 하는 날엔 사회복지사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를 연발하게 된다. 서비스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서비스를 받을 때는 그렇게 고마워하던 당사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 둘 불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사자들 뿐 아니라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사람은 누구나 어떤 일에든 내성이라는 것이 생기고, 예전보다 더 큰 자극을 느껴야 비로소 만족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일해야 할까. 어쩌면 불만의 상황은 자기 것으로 느끼지 못해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표를 이야기한 회사원은 직장 상사 때문에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서 불만일 수 있고, 백수는 자신은 열심히 준비하지만 취업할 수 없는 현실에 불만일테고, 이등병은 갑자기 바뀐 환경에 불만일 것이다. 또한 누군가에게 받게 되는 후원이나 서비스 역시 본래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갈수록 불만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상황이나 조건이 어렵더라도 개인이 노력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식의 성공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성찰하는 힘과 좋은 점과 가능성을 바라볼 수 있는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빅터 프랭클처럼 결국 끊임없이 자신의 삶과 상황을 성찰하는 사람이야말로 어떤 상황에서건 탄력성을 가질 수 있고, 삼십년전 평화시장에서 분신한 전태일 열사처럼 상황을 바꾸고자하는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부분이라도 당사자들이 주체성을 기를 수 있게 도와야한다. 이를 위해 주민, 당사자와 사회복지사가 함께 성장하는 교육이 필요하고, 사회복지 서비스나 프로그램도 당사자의 인격을 기르고, 당사자의 주체성을 살리거나 세우는 방향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만족에 이르는 길2 : 의미찾기
사실 회사원, 백수, 이등병의 불만족은 그들이 자신의 상황을 자신의 시각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회사원은 본인이 이등병을 부러워하듯 백수가 자신을 부러워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백수, 이등병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것은 자신의 일에 의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상황을 광고로 보고 있는 우리의 눈에는 한심해 보일 수 있으나, 어쩌면 우리도 광고 속 그들과 다를 바 없을지 모른다.
우리가 만나는 당사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우선 그들은 오직 자신의 시각에 갖혀 문제를 보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당사자들과 먼저 할 일은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여 충분히 들어주는 것이다. 이야기하는 동안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이야기에 대해 다른 시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다음으로 사회복지사들은 당사자들의 삶과 일의 의미를 함께 찾을 필요가 있다. 회사원이 비록 지금은 일 때문에 힘들기는 하지만 아마 처음 그 회사에 입사하면서 다짐한 것이 있을 것이다. 백수 역시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다음 과정을 준비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박카스 광고에서 보듯 혼자서는 그 의미를 찾기 힘들지 모른다. 사회복지사는 우리가 만나는 당사자들이 그 의미를 찾게 돕는 일을 할 필요가 있다. 물론 혼자서 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의 자조모임으로, 혹시 지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주민조직으로 그런 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한다. 사회복지의 ‘복지(福祉)’ 역시 그런 삶을 표현한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사회복지사들은 당사자들의 행복을 위해서 진정한 만족에 이르는 길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진정한 만족이란 무엇일까? 자못 철학적이고 진지한 주제이긴 하지만 결국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는 성찰하기와 지금 삶과 일에 대해 올바른 의미찾기가 필요한지 모른다. 성찰하고 의미를 찾은 회사원, 백수, 이등병의 삶은 분명 광고 속 그들과 다를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당사자, 주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