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돼먹은 영애씨>, <응답하라 1997>, <화성인바이러스>, <코미디빅리그>, <현장토크쇼 TAXI>. 많은 이들이 리모콘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한번쯤 보았을 프로그램들이다. 이 프로그램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엔터테인먼트 채널’을 표방하는 방송사 tvN의 프로그램들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들 프로그램들은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내는 생활과 감성의 틈새를 발견하고 특화하여 어느새 하나의 브랜드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요즘 그 맹맥을 잇는 프로그램이 <푸른거탑>이다. 한 내무반의 병영생활을 다루고 있는 <푸른거탑>은 케이블방송이라는 한계를 넘고, 스타캐스팅이 없다는 불리함을 넘어 2% 이상의 시청률과 높은 실시간 검색어 순위 등으로 선전하고 있다. <푸른거탑>의 성공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있을까.
의미를 부여하다
<푸른거탑>을 설명하는 문구는 ‘군디컬드라마’다. 군대라는 소재와 메디컬드라마라는 장르의 합성어이다. 바로 메디컬드라마 <하얀거탑>을 패러디한 제목인 것이다. <하얀거탑>이 야망을 품은 천재의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대형병원의 계급과 권력, 욕망과 갈등을 다룬 것처럼 <푸른거탑>은 군대에서 벌어지는 계급과 권력에 따른 여러 에피소드를 다룬다. <푸른거탑>은 <하얀거탑> 속 등장인물들의 진지한 성격과 격정적인 말투를 차용하고 있으며, 배경음악 역시 <하얀거탑>의 그것을 그대로 살려 쓰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하얀거탑> 패러디를 통하여, <푸른거탑> 제작진은 군대를 ‘짬밥순’의 단순한 계급집단이 아닌 <하얀거탑>의 대형병원처럼 권력과 욕망이 이합집산 하는 긴장감 있는 현장으로 생생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또한 <푸른거탑>은 시트콤답게 코미디적 요소를 가미하는데, 코미디 요소는 대부분 권력을 비트는 것에서 나온다. <푸른거탑>의 대대장은 병사들에게 군인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눈밭에 누웠다가 기절하고, 태권도 시범을 보이다 사병의 발차기에 큰대자로 쓰러진다. 대대장의 허세를 비트는 것이다. 비슷하게 병장, 상병 등 선임병들은 종종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속물적인 근성을 보이며 후임들의 놀림감이 된다. <하얀거탑>과 같이 권력과 욕망이 난무하는 정통드라마를 차용하되, 권력에 대한 비틀기라는 시트콤식 의미를 다시 부여한 것이다.

<푸른거탑>의 성공요인 중 가장 크게 볼 수 있는 것이 ‘공감’이다. 군필자나 현역병들은 자연스럽게 <푸른거탑>에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가장 싫어하는 여성들이나 군미필자들까지 폭넓게 포섭할 수 있었던 요인은 <푸른거탑>이 군대라는 소재에 새로운 의미들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직장이나 학교도 <푸른거탑>처럼 계급과 권력이 분명히 존재하는 곳 아닌가. 그러니 후임병들을 괴롭히던 선임과 장교들의 권력에 대한 비틀기가 시도될 때 모두가 비슷한 쾌감을 느끼는 것 아니겠나.
우리가 만나는 당사자들과 지역사회를 생각해보자. 그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저 일정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지, 그것이 고정관념이 되어 다른 것을 시도해볼 수 있는 여지를 막고 있지 않은지 말이다. 분명한 것은 <푸른거탑>이 뻔한 군대이야기를 <하얀거탑> 패러디와 권력 비틀기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생생하게 살려냈듯이, 우리 역시 당사자들과 지역사회에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들을 발견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회복지사들은 <푸른거탑>의 PD나 작가처럼 당사자, 지역사회에 예민하게 귀를 열고, 민감하게 바라보고, 열정적으로 다가가야 할 것이다.
디테일을 살리다
사실 군대 에피소드는 개그나 시트콤에서 지속적으로 쓰여 온 소재다. 대표적인 것이 1980년대 KBS에서 방영된 <유머일번지-동작그만>이다. <동작그만> 역시 그 시절 군생활의 이야기들을 다양한 캐릭터를 통하여 드러냈다는 점에서 <푸른거탑>과 비슷하다. 하지만 <동작그만>은 세트장에서 진행된 단순 코미디코너다. 그에 반해 <푸른거탑>은 코미디 요소가 있으되 단순 코미디로만 정의할 수 없다.
<푸른거탑>의 촬영은 세트가 아닌 실제 부대와 야외에서 진행된다. 예를 들면 1화에서 방영된 혹한기훈련 장면은 코미디코너처럼 세트에서 하는 시늉하듯 연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출연자 모두 상의를 모두 벗고 눈밭에서 뒹구는 식으로 실제 군인들의 혹한기훈련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또한 대사들 역시 실제 군인들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다. 특히 최종훈이 연기하는 말년병장은 “젠장 말년에 군기교육대라니 말년에 좌로 굴러 우로 굴러라니”, “고통이 뉴런을 타고 대뇌 전두엽까지 전달되는걸”처럼 실제 말년병장의 정신세계를 생생하게 표현한다. 이런 대사들은 <푸른거탑> 김기호 작가가 자신의 군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실제 군대를 장소로 사용하고 군인들의 일상을 살아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디테일이, <푸른거탑>을 단순히 코미디코너로 웃는 것에 그치게 하지 않고, 시청자들에게 실제 군생활에 버금가는 몰입도를 선사하는 것이다.
사회복지 역시 디테일이 필요하다. 우리가 하는 일들은 대부분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당사자의 삶을 디테일하게 담아내야한다. 당사자들이 맞닥뜨리는 상황, 당사자들의 심정을 깊이 있게 파악하고 그것을 어떻게 살려낼지를 고심해야하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는 다양하고 복잡한 역동들이 있으며, 이는 단순히 책상에 앉아서만 작성한 사업계획서로는 모두 담아낼 수 없는 것이다.
tvN 프로그램들의 승부수
다시 tvN 이야기를 해보자. tvN은 계속해서 매력적인 브랜드들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엔터테인먼트 채널’이라는 정체성이 있다. tvN은 이 정체성을 바탕으로 직장인들의 삶을 리얼하게 표현하면 어느새 시즌11을 방영 중인 <막돼먹은 영애씨>, 90년대 아이돌 팬덤의 감성을 살려내며 큰 성공을 거둔 <응답하라 1997>, 우리 주변의 특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화성인바이러스> 등 여러 가지 브랜드들을 만들어냈다.
그런 점에서 <푸른거탑>은 앞서 성공을 거둔 프로그램들과 궤를 같이 한다. 공중파에서 잘 시도하지 않는 소재이거나, 스타캐스팅 없이도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이끌어내고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 바탕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소재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디테일을 살리는 것에 있다.
사회복지 역시 tvN의 승부수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몇 년이 지나도 아무 변화가 없는 지역사회, 하나도 성장하지 않는 것 같은 당사자와 나의 모습이 실망스러운가. 그렇다면 새로운 의미를 찾아보고, 디테일을 살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