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킥3>, 다시 돌아온 김병욱 월드
사람들이 어떤 드라마에 대해 기대감을 갖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독특한 줄거리나 설정일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출연여부일 수도 있으며, 이전 작품에서 감동을 준 작가, PD 때문일 수도 있다. 기대감의 대상을 드라마가 아니라 시트콤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기대감의 이유를 PD로 한정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김병욱 감독을 떠올릴 것이다.
대중이 김병욱 감독에게 기대감을 갖는 이유는 <순풍산부인과>부터 <거침 없이 하이킥>, <지붕 뚫고 하이킥> 등 하이킥 시리즈까지 연이어 성공시켰으며, 정일우, 신세경 등 많은 청춘스타들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우리가 그의 시트콤에 기대감을 갖는 것은 어떤 드라마보다, 심지어 웬만한 다큐멘터리보다 시대와 세태를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새롭게 시작된 김병욱 감독의 하이킥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인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3>)은 우리 시대를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자.

짧은 다리, 패자들의 이야기
<하이킥3> 제작발표회에서 김병욱PD는 “장년층과 어린이 캐릭터 만들기는 쉽지만 왠지 자기복제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아 그런 요소를 제거했고 3대라는 구조가 현실적이진 않아 보다 현실적인 설정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하이킥3>에는 야동순재 같은 장년층이나 빵꾸똥꾸 진희 같은 어린이가 핵심인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사업실패로 처남 집에 얹혀사는 40대 가장 안내상부터 사촌언니와 언니 후배, 외국인교사와 함께 사는 집의 주인인 고등학생 지원까지 2대 정도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가 이번 작품의 제목처럼 ‘짧은 다리’라는 공통점으로 연결되어 있다.
2009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나왔던 ‘180cm 이하는 루저’라는 말이 큰 이슈가 되었을 만큼 2000년 이후 우리는 철저한 외모지상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현 시점에서 ‘짧은 다리’는 실패와 결핍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이킥3>의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그런 ‘짧은 다리’를 하나쯤 가지고 있다. 잘 나가던 중소기업 사장이던 안내상은 친구의 배신으로 사업에 실패하여 가족들과 함께 빚쟁이들에게 도망 다니는 신세이고, 휴학생 백진희는 번번히 취업에 실패하고 학자금 빚독촉에 시달리며 고시원에서 마저 쫓겨난 88만원세대의 표상이다. 고등학교 교사 박하선은 살 곳이 없어 사촌동생에게 더부살이를 하고, 집주인인 고등학생 지원은 부모님이 모두 일찍 돌아가신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가장 멀쩡해 보이는 보건소 의사 윤계상 역시 상부와의 갈등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보건소로 좌천된 아픔이 있다.
그런 점에서 <하이킥3>는 상처 하나씩 가슴에 담고 사는 ‘짧은 다리’들이 어울어지는 소동극이다. 시트콤임에도 재미있게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은 그들의 모습이 우리와 겹쳐지기 때문이다.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던 진희가 보건소 인턴에 합격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 부모의 사업실패로 아이스하키를 그만둔 종석이 마지막 경기 후 돌아서는 뒷모습, 평소 ‘확 마’를 달고 살며 당당하던 안내상이 집주인인 처남들의 눈치를 보는 장면은 2011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초상이다. 진희도, 종석도, 내상도 한걸음만 잘못 디뎌도 점점 더 바닥으로 떨어지고 마는,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극단적 양극화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 아니던가.

역습, 소통과 관계맺기 그리고 연대
그렇다면 당장 내 코가 석자인 우리 ‘짧은 다리’들에게 기회는 없는 것일까. 그 가능성은 <하이킥3>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치인 땅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실 땅굴은 처남 계상의 집에 살게 된 안내상 가족이 몰려온 빚쟁이들을 피하는 상황에서 처음 발견 된다. 이후 땅굴은 안내상에 의해 옆집 지원이네 집까지 연결되면서 두 집 사이의 활발한 교류의 통로가 된다. 처음에는 안내상에 의해 고장 난 화장실 변기를 이용하기 위해 지원이네 사람들이 땅굴을 통해 계상이네 집을 찾거나, 엉덩이를 다친 백진희를 치료하기 위해 윤계상이 땅굴을 이용한다. 이후 땅굴은 두 집 사람들이 양념이나 공구를 빌리거나 서로 만날 일이 있을 때 언제든지 자유롭게 오고 가는 통로가 된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두 집 사람들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거나, 서로 고민을 진솔하게 나누는 사이가 된다.
<하이킥3>의 제목에 담긴 ‘짧은 다리’들의 ‘역습’은 결국 땅굴을 통한 소통과 관계맺기로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계상이네와 지원이네 가족은 처음에는 서로 서먹한 사이였으나 땅굴이라는 장치를 통해 서로 자연스럽게 왕래하는 사이가 되었다. 안면을 트고 부디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사촌이 되었다. 더 이상은 현관문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거나 초인종을 누르면서 반응을 의식할 필요 없이 가족처럼 드나드는 사이가 된 것이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고 사는 요즘, <하이킥3>처럼 옆집과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특별히 우리가 만나는 주민들은 어떤가. 그들은 누구와 얼마나 끈끈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가. 언젠가부터 사회복지의 주요한 방법이 된 사례관리나 주민조직화도 결국 그런 관계들을 살리거나 만드는 일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땅굴에는 어떤 함의가 있을까? 땅굴은 일단 가깝고 편하다. 왜 두 집 사람들이 멀쩡한 길과 대문을 놔두고 땅굴로 다니겠는가. 옆집에 가기 위한 가장 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한 땅굴은 재미있다. 중간중간에 호롱불이 켜져 있는 땅굴을 지나다보면 그냥 길을 걸을 때와는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땅굴의 존재는 두 집 사람들끼리 비밀을 공유한다는 의미다. 마을 사람들 중 지원이네와 계상이네 사이에 땅굴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땅굴이라는 중요한 비밀을 서로 공유할 만큼 깊은 사이라는 의미이며, 동시에 땅굴을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에만 통하는 공감대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시대가 팍팍한 것은 당장 내 코가 석자라는 인식, 즉 우리가 부딪히는 모든 문제를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만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가 자기 싸움만 싸울 뿐 함께 힘을 모으지 않기에 작은 힘들로 사그라지고 만다. ‘짧은 다리’들은 연대를 통해서만 ‘긴 다리’들과 대등한 힘을 가질 수 있다. 연대를 위해서는 먼저 소통과 관계맺기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사회복지사들이 해야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짧은 다리’들 사이에 ‘땅굴’을 놓는 일 아니겠는가. 어떻게 하면 이웃 간에 가깝고 편한 땅굴, 재미있게 동참할 수 있는 땅굴, 서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땅굴을 놓을 수 있을까? <하이킥3>가 우리에게 던지는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