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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꾼칼럼

<1박2일>, 누군가를 돕는 방법

김상진 2011-05-31 (화) 09:32 15년전 7244  

지금 바로 퇴근해도 좋습니다
피곤한 몸,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을 했는데 직장상사가 어떤 게임을 제안한다. 그 게임에서 이기면 바로 퇴근해도 된다고 한다. 이 쯤 되면 이거 장난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서 게임에 임하는 것은 당연한 노릇. 게다가 박빙의 게임을 이기게 되고, 상사는 진짜 바로 퇴근하라고 한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싶다.

그냥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2011년 5월 15일 방송된 1박2일 ‘왕레이스 청양편’의 내용이다. 1박2일 멤버 6명이 3대 3으로 팀을 나누어 팀대항전을 벌였다. 여러 가지 힌트를 풀어 촬영지에 먼저 도착하는 팀이 승리하는 게임이었고, 승리팀의 혜택은 ‘조기 퇴근’이었다. 치열한 다툼 끝에 강호동, 이수근, 김종민 팀이 승리했다. 그 중 강호동, 이수근이 당당하게 ‘조기 퇴근’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앞서 살펴본 장면처럼 쾌재를 부를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막상 퇴근은 했으나 두 사람은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집으로 가지도 못하고, 촬영장으로 돌아오지도 못했다. 촬영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식당에서 여섯 시간을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나영석PD와 나머지 네 멤버들이 강호동, 이수근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눈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사람을 돕는다는 것, 섬긴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왜 퇴근하고도 퇴근하지 못한 것일까
나PD와 6명이 다시 만난 장면에서 나온 ‘생각과는 달리 잔인했던 퇴근 선고’라는 자막처럼 조기 퇴근은 어느새 혜택이 아닌 벌칙이 되어 버렸다. 그들은 왜 퇴근하고도 퇴근하지 못한 것일까. 이수근은 그 이유를 지나가는 말로 “한창 일해야할 시간인데 퇴근 하니 몸이 이상하더라”고 했다. 또한 둘은 카메라가 없으니 강호동은 힘없이 늘어지고, 이수근도 재미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6시간동안 그저 아무 의미 없이, 무엇을 해야할 지도 모른 채 시간을 보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묘하게도 은퇴한 중년의 얼굴이 떠오른다. 한창 일할 나이에 명예퇴직한 사람들 뿐 아니라 정년퇴직한 사람들 역시 은퇴 후 기력이 약해진 모습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1박2일의 강호동, 이수근이 조기 퇴근하고 힘들었던 것은, (사회적) 역할을 잃어버림에 따라 자기효능감이 사라져버렸고, 자아정체성 혼란을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카메라 앞에 있을 때에나 국민MC 강호동이고 재간둥이 이수근이지 그것 없이 남겨졌을 때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결국 누군가를 돕는 일의 핵심은 그 사람이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끊임없이 가치를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이상과 가치를 추구하며 가치 있게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은퇴한 사람 뿐 아니라 장애인, 어르신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사들은 어떤 일을 하건 그것이 참여하는 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그 역할을 통해 어떤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한다. 그러니 사회복지사가 일방적으로 다 하기 보다는 주민, 참여자에게 여쭤보고 작은 역할이라도 참여하게끔 해야 하는 것이다.


정중하게 ‘부탁’드릴께요
나PD와 4명의 멤버가 찾아갔을 때 강호동과 이수근은 무료한 시간을 견디다 못해 식당 방 한구석에서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왜 이러고 있냐는 한 멤버의 질문에 이수근은 “갈 데가 없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강호동 역시 방금 전까지 둘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물론 누가 봐도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을 한 이유는 물론 자존심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퇴근을 취소하고 데려가 달라고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까닭 역시 여섯 시간 전만 해도 당당하게 퇴근했던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시 촬영장으로 복귀하든지 아니면 퇴근하든지 선택하라는 멤버들의 말에 이수근은 복귀하지 않겠다고 한다. 내심 나PD와 멤버들이 잡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고, 간간이 그런 마음을 내비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지금와서 자존심을 내려놓고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로 이 순간에 나PD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한다. “6명이 떨어져 있는 것 아닌 것 같아요. 강호동, 이수근씨도 다같이 있을 때 가장 힘이 나시는 것 같고요. 그래서 퇴근을 포기하시고 저희와 똑같이 녹화에 참여하시기를 제작진을 대표해서 ‘부탁’드립니다. 정중하게 부탁드릴께요.” 나PD의 말이 끝나자 강호동은 ‘부탁’이라고 하니 들어드리겠다고 하며, 부탁으로 자존심을 세워줘서 고맙다는 말을 한다.

상황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나PD는 강호동 매니져로부터 연락을 받을 때부터 강호동, 이수근이 다시 촬영에 복귀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게다가 자존심 때문에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간파한다. 그런 다음 그는 나머지 멤버들과 함께 직접 찾아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강호동, 이수근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의 언어로 듣고자 한 것이다. 말하는 내용을 가만히 듣고 난 후 나PD는 그들이 정말 촬영에 복귀하고 싶어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선뜻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낸다. 그 다음은 함께 살펴본 것처럼 정중하게 ‘부탁’을 해서 강호동, 이수근이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나PD의 이런 태도는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준다. 우선 나PD는 자신의 판단과 생각대로 한 것이 아니라 직접 당사자를 만나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판단의 근거를 철저히 당사자들의 말에 둔 것이다. 다음으로 나PD는 ‘부탁’을 통해 두사람을 세워 주었다. 사실 나PD가 입을 열기 전까지 두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처분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PD가 ‘부탁’하는 순간 두사람은 당당한 선택의 주체가 된 것이다. 지역주민, 당사자를 만나는 것도 이와 같지 않겠는가.


누군가를 돕는 일



촬영장으로 복귀하며 강호동은 매번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며 "오세요”라고 외칠 때가 가장 피곤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기분 좋은 고단함’이었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기분 좋은 고단함’을 느낄 기회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 또한 내가 판단하고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를 만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여쭤 보고, 정중하게 부탁드리는 것이 누군가를 섬기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김문재 2011-05-31 (화) 17:38 15년전
사람을 세우것에 대한 생각을 합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여쭤보고, 정중하게 부탁드리는 것.....너무 많이 동감합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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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정 2011-05-31 (화) 17:57 15년전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평소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내가 다 할 수 있지만 누군가를 위해 남겨두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기분좋은 고단함을 함께 누리는 기쁨. 그 방법에 공감하고 또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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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형희 2011-06-02 (목) 10:02 15년전
항상 상진쌤의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쓰실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하는 것, 그리고 그 역할에 대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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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진 2011-06-14 (화) 09:56 15년전
저도 1박 2일 이 회를 의미있게 보았습니다. 상진쌤이 빛날 수 있게 글을 써 주신 거 같아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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