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정의를 위해 나서는 기개가 있는 사람을 말한다. 앞서 열거한 일들만 보면 그는 분명 의인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모든 일을 한 김성룡 과장의 정체다. 사실 그는 지방에서 조폭이 운영하는 회사의 회계, 경리 일을 보며 관련 사업장의 검은 돈 일부를 함께 ‘노나 먹던’ 사람으로 평생 의인과는 전혀 관계가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 김과장은 어떻게 의인이 될 수 있었을까.
초심
김성룡 과장은 요즘 잘 나가는 KBS2 수목드라마 <김과장>의 주인공이다. 김과장은 삶의 목표가 분명한 사람이다. 그는 빠른 시일 안에 덴마크로 이민을 가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10억원을 모으기 위해 (그가 자주 쓰는 표현대로) 열심히 삥을 뜯고, 검은 돈을 노나 먹는다. 그렇다고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이름 없는 지방 대학 출신이기는 해도 회계 능력 하나는 대기업인 TQ그룹 경력직 시험에서 직무평가 1위를 차지할 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또한 결정적인 순간을 간파하는 판단력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기력을 지녔다. 김과장은 의인이 되기 전까지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오로지 10억원을 목표로 자기 계좌를 채우는데 사용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김과장이 덴마크로 이민을 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역설적이면서 재미있다. 덴마크가 청렴지수 1위 국가라서 중간에서 나쁜 짓 하고 돈을 떼어먹는 사람들이 없고 정직하게 일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어서 그렇단다. 인생의 대부분을 남의 돈 ‘삥땅’하며 살아온 김과장에게는 참 어울리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김과장은 자신의 삥땅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강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덴마크로 표현된 것이다. 이는 김과장의 초심과도 닿아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드라마에 잠깐씩 등장하는 김과장의 어린 시절 회상 장면을 보면 김과장의 아버지는 진짜 의인이었다. 직장인으로서 회사의 불의에 맞서고 이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아들과 함께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인생을 살지만 아들에게는 늘 정직과 의로움을 강조했다. 김과장이 삥땅 인생이 된 것은 그런 아버지에 대한 반작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존재와 덴마크를 연결해보면, 김과장의 초심은 결국 삥땅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청렴하고 정직한 삶을 동경해왔음을 유추할 수 있다.
주변사람들
지방에서 조폭을 위해 일하던 그는 여러 우여곡절 끝에 TQ그룹 경리과장 자리에 앉는다.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스펙의 김과장을 그 자리에 앉힌 것은 검찰 출신으로 TQ그룹에 스카우트된 서율 이사였다. TQ그룹의 불법적인 분식회계 업무를 맡기기 위해 김과장처럼 과거에 문제가 많은 사람을 뽑은 것이다. 김과장과의 첫 만남에서 서율 이사는 자신이 시키는 대로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라고 하며 그 과정에서 적당히 자기 몫을 삥땅하라고 한다. 능력있는 삥땅 인생 김과장에게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제안이었다. 빠른 시일 안에 10억을 모으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지방 조폭의 업소들보다는 대기업인 TQ가 나을 것이라 판단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과장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우연히 찾아왔으니 앞서 살펴본 것처럼 괴한으로부터 여성을 구한 일이었다. 그 여성은 자신의 전임자 이과장의 부인이었다. 이과장이 회사로부터 습격을 받아 식물인간이 되었고 도박, 횡령의 모함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 이과장 부인은 날마다 회사 앞에서 1인 시위 중이었다. 회사 정문을 나서던 김과장은 빙판에 미끄러져서 도로 쪽으로 넘어지게 되고 이과장 부인을 밀어 넘어트린다. 원래 이과장 부인을 노리며 질주한 괴한의 차량이 김과장을 덮친 것이다. 이 장면은 뉴스로 나가며 김과장은 테헤란로의 의인으로 주목받게 되고 회사 동료들 역시 사고 후 첫 출근길의 김과장을 박수와 환호로 맞이한다.
이후 김과장은 이과장 부인의 소송을 취하시키고, 회사의 노조파괴 시도를 밝혀내며 경리과 동료들의 신임을 얻어나간다. 여기서 결정적인 장면이 노조에 관한 일이다. 노조위원장으로 오해를 받아 회사로부터 사주를 받은 사람들에게 납치된 김과장은 3억원을 받고 노조를 해체하겠다는 각서를 쓴다. 모아둔 2억원에 3억원을 더해서 덴마크로 갈까 아니면 당당히 돌려주고 노조를 도울까 고민하는 장면 말이다. 이전까지 누군가를 도운 일들은 그저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다면 이 장면부터는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여 의인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 명예퇴직 위기에서 자살을 결심한 동료를 구한다거나 특별수당을 나눈다거나, 해체된 경리부를 되살리고 TQ택배를 살리고자 노력하는 것은 모두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정의를 위해 나서는 기개가 있는 사람’ 즉 의인의 삶이다.
김과장이 자발적 의인이 된 중요한 이유를 주변사람들이라고 보았다. 지방 조폭 회사에서 일할 때 그의 주변에는 대부분 조폭들로 탈법과 부조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처음 TQ그룹에 입사했을 때 그를 채용한 서율 이사도 비슷한 악인이었다. 그런 사람들 옆에 있으니 어울리며 삥땅 인생을 살기가 훨씬 편하고 수월했을 것이다. 그에 반해 자발적 의인이 된 노조 에피소드에서는 회사에 의해 불합리한 대접을 받는 노조원들과 함께 하는 과정에 노조원들을 도왔다. 또한 경리부 사람들과 일하면서 김과장은 비로소 옳은 일을 한다, 함께 일한다는 개념을 다시 세울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한국사회복지사협회도 모두 새로운 리더가 필요한 시점이다. 혼란한 상황을 잘 수습하고 구성원들의 마음을 잘 모으는 일이 급선무다. 그러기 위해 그들에게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정의를 위해 나서는 기개가 있는 사람’ 즉 의인의 역할이 필요하다. 먼저는 초심을 잘 지키기 바란다. 국민을 위해 회원을 위해 일하고자 하는 그 마음을 끝까지 잃지 않기 바라고 자주 되새기기 바란다. 거기에 덧붙여 우리의 역할도 필요하다. 우리가 먼저 좋은 국민 좋은 회원이 되어 리더의 곁에서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낸다면 새로운 리더는 분명 자발적인 의인이 되기 쉬울 것이다.
- <소셜워커> 2017년 3월호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