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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꾼칼럼

[눈먼 자들의 도시] 그래도 공동체다

김상진 2020-05-12 (화) 09:18 6년전 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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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정영목 역) 해냄출판사 2006

 

 

소설 없는 삶

올해 42살. 정확히 TV 세대다.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 챙겨 보고, 화제 드라마는 몰아서 본다. 주로 TV 보느라 몇몇 유튜브 채널을 보거나, ‘킹덤’ 시리즈 본 것 외에는 없으니 유튜브, 넷플릭스 천하에 조금 뒤처진 셈. 직장에서 학습 도서를 읽거나, 업무 관련 책, 친구가 추천해 주는 책 정도 읽지 않으면 그다지 책을 읽지 않는다. 그러니 소설은 후 후 후 순위다.

그래도 몇 년에 한 번 가끔 영화관 가는 기분으로 댄 브라운을 읽는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으며 댄 브라운이 가볍게 느껴졌다. 그야말로 주제 사라마구가 ‘따꺼(큰형)’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댄 브라운에 비해 쉽게 어렵게 읽은 부분들도 있었다. 리얼함과 묵직함이 그렇다. 댄 브라운 자리에 주제 사라마구를 놓고 종종 읽을 것 같다.


의사와 의사 아내

가장 감정 이입한 캐릭터는 의사와 그의 아내다. 의사는 자연스럽게 리더 비슷한 위치가 되지만 시종일관 유약하다. 그는 종종 자신의 원칙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결단력이 없으니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가장 큰 문제는 우리에게 조직이 없다는 거야. 각 건물마다, 각 거리마다, 각 지역마다 조직이 있어야 해.

정부가 필요하다는 거로군요, 아내가 말했다.

조직이 있어야지, 인간의 몸 역시 조직된 체계야, 몸도 조직되어 있어야 살 수 있지., 죽음이란 조직 해체의 결과일 뿐이야.

눈먼 사람들의 사회가 어떻게 조직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어요.

스스로를 조직해야지, 자신을 조직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눈을 갖기 시작하는 거야.

어쩌면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 실명의 경험은 우리에게 죽음과 고통만을 주었어요, 내 눈도 당신 병원처럼 쓸모가 없어요.

p 416

의사의 주장에 동의한다. 결국 ‘조직된 시민의 힘’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조건이 너무 나쁘다. 모두가 눈이 멀어 서로 신뢰 수 없는데 어떻게 조직할 수 있을까. 그저 생존 아니 연명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상황 말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를 감시 감독하는 군인과 체계가 있지만,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이미 원칙도 통제력도 잃은 곳 아닌가. 무슨 조직을 말하고 무슨 희망을 말하랴. 그러니 의사는 무기력할 수밖에. 나의 삶, 나의 일에서 가치와 원칙을 말하지만 자주 무너지는 나를 본다. 또 다른 의사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회복지 실천에는 당사자를 주인공으로 돕고자 하는 흐름이 있다. 정부나 비영리단체에서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재화, 서비스가 아닌 당사자 스스로 대안, 희망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식이다. 물론 나도 당사자주의, 강점 관점에 동의하고 스스로 이룰 수 있게끔 돕고자 한다. 학부 때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를 읽고 짧은 소감을 나눈 적 있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도와야 한다’ 정도의 표현이었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한 선배의 딱 한마디 ‘그들이 아닌 우리로'.

‘그들이 아닌 우리’라는 관점을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이 의사 아내다. 그는 눈이 멀지 않았지만 눈이 먼 사람들 곁에서 같은 삶을 산다. 그저 살 뿐 아니라 함께 고통을 겪으며 적극적으로 눈먼 자들을 돕는다. 당사자의 주체성을 살리기 위해 실천하는 사회복지사로서 치열한 고민이 이것이다. 내 삶은 사회적 약자인 당사자와 다른데 어떻게 우리로 함께 하고 도울 수 있을까. 의사 아내처럼 같은 포지션으로 같은 경험을 해야 만 할까.

 

공동체주의

주제 사라마구의 대안은 소규모 공동체인 듯하다. 의사, 의사 아내, 첫 번째로 눈먼 자, 그의 아내, 안대 노인, 선글라스 여성, 엄마 잃은 아이가 공동체를 이루는 식이다. 노인, 중년, 아이까지 삼대로 이루어지며, 선글라스 여성이 아이의 엄마 역할을 하는 것 모두, 유사 가족의 표상이다.

초기에만 해도 가족의 유대감이 어느 정도 남아 있어, 친척들이 눈먼 사람들을 끌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일이 많았다.

p 339

먼저는 가족이다. 하지만 그마저 무너진 후 남은 자는 앞서 말한 유사 가족 형태의 소규모 공동체다. 국가 시스템이 붕괴되고, 개인주의가 만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공동체, 마음 터놓을 수 있는 공동체가 하나의 대안이다.

나의 사회복지도 마찬가지다. 결국 지역운동의 길로 가고 있다. 지역에서 함께 대안을 만들고, 서로 마음 터놓는 사이를 만드는 것. 물론 모든 일을 그리할 수 없고 계속 부딪히는 일들이 있지만 그걸 추구한다. 그래서 사라마구의 대안이 일종의 위로가 되었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복지관 1층 가람작은도서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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